조모 영면

한량의상념 2011.10.11 00:40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뭐 지난 2년간은 운신하지 못하셨고, 침대 신세를 지면서
최근 몇 개월은
그 사랑하는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셨으니
시기는 짐작치 못했지만 예정된 죽음이긴 했다.

연세도 아흔줄 들어서시는 고령인데다가
아들딸들이 다 속썩이는 자식들도 없으니 다들 호상이라 했다.


토요일 밤에 돌아가셔서 월요일날 발인을 해서
일요일 하루 시끌벅적 손님을 맞을 수 있었던 것도 복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청명한 맑은 가을볕에 꽃상여가 나간것도 복이라 했다.
상복을 입고 쨍쨍한 가을볕을 맞으며(산에서는 더웠지만)
할머니야 그런거 말해줘도 모르고 관심도 더더욱 없어서 모르셨겠지만,
뭐 큰아들이 모든 금전적인 문제와 방문 등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있었기 때문에
형제들끼리 큰소리내고 싸운 적 없었으니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겠고,
태어나길 은수저 물고 태어나시어 꽃가마를 타고 시집오시진 않은 것 같은데
꽃상여를 타고 돌아가시니 이만하면 이것도 복이라 할 수 있겠고.
내가 태어나서 지금껏 봐온 할머니 모습 중 가장 깔끔하고 예쁘게 화장까지 하고
이제껏 봐온 옷들보다 훨씬 화사하고 예쁜 색동옷을 입고 입관하셨으니 그것도 큰 복이 아닐까 싶다.
단정하고 아름답게 죽는건 사실 내 소원이다.

장례식장에서 옆의 집은 장관 기업체 사장 등 화환이 즐비하나 손님이 영 없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까지 했는데, 우리집은 문상객들이 끊임없이,
발디딜틈이 없이 와서 끊임없이 먹고 마시고 고스톱도 하고 간 것도 복이라 할 수 있다면 있겠고.
이렇게 많이 올줄은 다들 몰라서 분주하긴 했지만, 썰렁한 상청보다 훨씬 좋았다.

삼일장을 치르고, 할아버지 옆에 합장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래도 장손녀 결혼하는건 보고 돌아가셨으니 복이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 본인이 손녀가 결혼하는지, 어떤 손녀가 결혼하는지도 모르고 돌아가셨는걸 뭐.
손녀 결혼 전에 잘못되면 안된다고 간절히 기도하던 엄마 덕이 아닐까 싶다.

잠을 거의 못잤지만, 정신은 오히려 흐린 물 속에서 까맣게 떠오르듯 선명하다.
상청에서 왜 이렇게 안우느냐고 장례 주관하시는 분께서 뭐라하셨고,
어른들은 호상인데 왜 우느냐고 대꾸했다.
큰손녀인 나는 내 치마자락에 밟혀 맏손녀 절하고 일어나다

뒤로 벌렁 넘어지는 몸개그를 보여주며 상청의 사람들을 웃겨주기도 했다.

아예 안 운건 아니고 눈물 뚝뚝 흘리면서 절도 넙죽넙죽 했지만

할머니의 죽음이 슬프다기보다는 30년 넘는 오랜 세월 짊어진 아버지 어머니의 어깨에서
가장 무거운 돌이 내려지는게 기쁘면서도 한숨이 나고,
그러면서도 그 인고의 세월의 한 막이 내리는 순간이 아름다운 청춘과 젊은날이 훌쩍 지나
큰 딸이 느지막이 시집간 이후라는 사실이 슬퍼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잘생긴 청년과 예쁜 아가씨는 자식 낳아 기르고, 부모 봉양에 30년 훌쩍 넘는 시간이 흘러
이제 중년을 지나 노년을 맞이한다는 사실이 왜 이리 마음아프던지.


긴 세월 큰아들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외롭게 모든걸 짊어지셨던 아버지가
할머니의 염을 할 때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얹고 소리내어 우시는 모습이
가슴미어지게 아파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흑흑 느껴 울었다면 내가 나쁜 손녀일까.
이번 가을, 아버지는 환갑을 맞이한 기념(?)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장 말고 열시간 넘는 비행해서 가고픈 나라 여행가려고 하셨다.
환갑잔치같은거 하시는 분도 아니고, 평생 가보고 싶어하시던 먼먼 나라 가보시라고 했다.
그 첫 터키여행도 할머니의 건강문제로 기약없이 취소되었고,
그런 상황에 대해서 내색하실 분도 아니라 괜히 내가 다 속상했었던 일도 뜬금없이 생각이 났다.

이제.. 퇴직까지 하시게 되면 자식들도 다 컸겠다
세계 가고픈 곳들, 하고픈 것들, 먹고프신 것들 마음껏 즐기셨으면.. 싶었었는데,
퇴직전에 못난 자식 결혼과 부모님 초상까지 치르고
무거운 어깨의 짐을 한결 덜게되었다는 친척들의 말이 마음아프게 다가오기도 했고.
상청에서 이런 생각에 눈물을 흘린 나는 참 못된 손녀다.

회사로 돌아오니, 몇몇 분들이 조의금 봉투를 건네주셨다.
난 평소 조모 조부상은 봉투하지 않는데...
왠지 죄송스러워서 안받겠다고 하는데 기어코 주셨다.
아버지께 드리려고 전화하니,
"그거 다 네가 나중에 줘야하는 돈인데 네가 가지고 있다가 써."
나이가 드실수록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어하시고, 은근히 전화하셔서
"회사에서 요즘도 퇴근이 늦어?" 하고 물어보시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너무 무거웠던 장남의 무게를 이제야 덜게 되셨다.
일년에 여러번 있는 제사는 장손과 손주며느리에겐 아무것도 아닐테다.
이제는 좀.. 자유롭게 하고픈거 하시고, 노시고픈거 노시고, 가고픈데 가시면서
바람같이 구름같이 유유자적 사셨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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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언제나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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